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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무역> 특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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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025회   작성일Date 08-07-0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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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무역> 특집기사
    2008.5.17. 송윤창 기자
    - 앉아서 판매하던 방식 벗어나 해외로 -
    디자이너브랜드 중심 동대문 넘어서기가 한창

    ‘글로벌동대문’을 향한 걸음마가 막 시작됐다.

    디자이너브랜드를 중심으로 과거 ‘저가상품집산지’라는 동대문의 이미지 지우기가 한창이다. 앉아서 주문을 받거나 판매만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바이어를 찾아 뛰고 있다. 신진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미국․중국 등지에 직접 쇼룸을 설치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 움직임도 활발하다. 거기에 최근 인플레이션 압박과 위안화 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로 중국을 찾던 해외바이어들이 다시 한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부와 서울시도 나섰다. 지난해 동대문을 패션전문산업단지로 지정한데 이어 글로벌동대문 만들기 일환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도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나 신․구세대간 세대교체에 따른 진통 등 유통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과거 동대문의 성공신화는 주로 상가건축과 충격마케팅을 통한 하드웨어구축에 의해 씌어졌다. 남은 것은 그것을 작동시킬 수 있는 디자인․유통시스템개선 등 소프트웨어적 측면이다. 이에 [주간무역]에서는 글로벌패션유통 메카로서 동대문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고 ‘글로벌동대문이 뛴다’는 주제로 6회에 거쳐 연재시리즈를 기획한다. 글로벌동대문을 위한 본지 시리즈 기획에 관계자들의 적극적 도움이 뒤따르기 바란다.



    ◆ 동대문의 현황

    과거 동대문에는 3:5:2 법칙이란 것이 있었다. 동대문에 진출하면 대성하는 가게가 30%, 적당히 현상 유지하는 가게 50%, 멋모르고 뛰어들었다 실패하는 가게가 20%라 해서 붙여진 말이다.

    당시 ‘동대문 배우기’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동대문은 인기가 있었다. 연구소들도 앞 다퉈 동대문시장 연구보고서를 써냈다. 지금까지 진출기업의 80%가 성공한 시장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대문은 소액의 종자돈과 디자인력, 열정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IMF경제위기 와중에서도 환율폭등에 따른 가격경쟁력과 한국에만 존재했던 디자인․봉제․판매․유통의 자기완결적인 일일생산시스템으로 동대문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중국과 동남아의 저가상품이 몰려오고 신용카드 대란이 겹치면서 국내소비가 위축되는 등 상황은 완전히 급변했다. 하지만 시장은 부동산 투기에 열중했고 시장의 잘못된 선택은 동대문을 점점 더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내셔널브랜드의 저가마케팅과 지방마다 들어선 아울렛, 대형마트의 패션사업 진출은 주 고객이던 지방 의류소매상마저 초토화 시켰다.

    ‘저가의류집산지 동대문’이라는 딱지는 소비자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으로 소비자는 굳이 발품을 팔지 않고도 클릭 한번으로 원하는 상품을 싼 값에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경쟁력이었던 디자인․봉제․유통의 일일생산시스템은 붕괴됐고 미국․일본․유럽의 바이어들은 중국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위기 뒤에는 항상 기회가 따른다. 최근 동대문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과거 상가 중심의 동대문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디자인과 유통시스템 선진화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다.


    ◆ 변화와 가능성 ①=디자이너 브랜드

    변화의 움직임은 신진디자이너들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이 만든 ‘동대문디자이너브랜드’는 자기완결적인 패션시장으로서 동대문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고 중국의 저가․물량공세를 적절히 이용해 새로운 경쟁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 신진디자이너는 다년간 국내․외 유명브랜드기업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이들 ‘디자이너브랜드’는 국내․외에서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제 이들 브랜드는 동대문을 상징하는 대표아이콘이 됐다. 수십만 원이 넘는 가격대에도 고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유럽․일본․미국시장에도 공급돼 연간 수출금액만 100억원이 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수출만 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스스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있었던 ‘매직쇼’에서는 국내 유명브랜드를 제치고 동대문 디자이너브랜드 ‘헴펠(HEMPEL)’이 현지 바이어들로부터 최고의 점수를 받기도 했다. 쇼 현장 오더 액만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밀앤아이(사장 명유석)는 미국 LA 뉴마트 7층에 자체 쇼룸을 설치하고 이곳을 통해 현지 백화점 빅 바이어들과 직접 교류하고 있다. 또 폴리아(추미정)의 경우 중국 청두(城都)에 쇼룸을 설치하고 향후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급부상 할 중국시장 현지화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 디자이너들은 탄탄한 디자인기술과 앞선 마케팅기법을 무기로 중국기업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디테일한 마감기술과 빠른 납기, 신용 등 경쟁력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지식기반산업지원의 일환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해외전시회에도 빠짐없이 참여해 견문을 넓히고 있다.

    디자이너브랜드들은 국내․외 유명백화점에도 진출해 동대문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동대문=저가상품’이라는 등식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명유석 밀앤아이 대표는 “이미 동대문브랜드 백화점브랜드를 나눌 근거가 사라졌다. 현재 백화점에서 유통되는 유명브랜드 중 동대문상품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소싱이 대세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지금까지 동대문 유통시장의 가장 큰 고민은 가격이냐 디자인이냐의 문제였다. 과거에는 동대문 내에서의 디자인카피와 저렴한 국내 봉제인력을 활용한 일일생산시스템이 주된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등 동남아시장에서 생산된 저가의 상품이 동대문시장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가격경쟁은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



    ◆ 변화와 가능성 ②=대한민국 디자인 랜드마크

    동대문에서 디자인․봉제․판매의 일일생산기능을 되살릴 것이냐, 아니면 우수한 디자인 인력들을 활용한 디자인기획과 유통시장 기능을 최대화 시켜야 하느냐 문제는 갑론을박의 풀리지 않는 숙제다. 아직도 신․구세대 간에는 이 문제를 놓고 한창 논쟁중이다.

    글로벌 동대문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디자인이다.

    현재 패션시장에서 새로운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유명 패션쇼에 출품된 디자인이 각국의 디자이너들에 의해 적절히 변형돼 생산되고 있다. 동대문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경쟁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디자인의 생산 그 자체다. 세계적 디자이너가 유행을 제시하면 누가 더 빨리 효과적으로 베껴내느냐가 경쟁력이다. 그게 디자인이다.

    지금 한국은 인구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디자인 인력을 배출하는 나라다. 1년에 1만 명에 달하는 대학교육을 받은 디자인인력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잉 공급되고 있는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아직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동대문 외국인구매안내소 고동철 소장은 10년 넘은 동대문 터주박이다. 그는 “해마다 정부에서 수억 원씩 지원받는 사단법인들, 정부지원기관은 대체 무엇을 했나?”며 “글로벌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가능한 것이다. 해마다 수천 명씩 몰려드는 준비되지 않은 디자인 인력을 재교육시켜 해외로 진출 시키는 것이 글로벌동대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라며 현재 정부정책지원 방식을 꼬집었다.

    실제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각종 사단법인들과 정부산하 지원기관들이 추진한 동대문지원방식은 대부분 상가활성화를 위한데 맞춰졌다. 글로벌 소싱이 대세로 자리 잡은 국제무역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Made in Korea만 외치는 것이 현실이다.



    ◆ 변화와 가능성 ③=패션유통의 변화

    합리적 유통구조의 문제는 지금 동대문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축소판이다.

    그동안 동대문의 역사는 주로 상가를 중심으로 씌어졌다. 1905년 광장시장 설립부터 지금까지 4단계에 걸친 동대문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낸 과정은 상가건립과 마케팅을 통한 하드웨어 구축이었다. 남은 것은 이미 포화상태인 부동산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잘 작동시킬 수 있는 최고급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작업이다.

    국내 대규모 봉제시스템이 사라진 상황에서 대규모 주문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한 빠른 유통시스템을 구축해 경쟁력을 키우는게 중요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동대문은 이미 유통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 웹2.0시대에 알 맞는 유통시장을 어떻게 만드냐가 경쟁력이다.

    현재 동대문유통시장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재고․반품 문제, 해외 바이어 유치문제, 현재 30%를 넘어선 상가공실률, 해외 발송에 따른 제반 절차의 문제 등 유통구조선진화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하지만 지금 동대문은 낡고 후진적인 유통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Made in Korea만 외치고 있다. 현재 산업단지관리공단은 동대문의류봉제인연합회가 제안한 아파트형 공장을 동대문 한복판에 짓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 소장은 “지금 동대문같이 비싼 땅에 아파트형봉제공장이 웬 말인가?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공장에 어떤 봉제업체를 입주시킬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과거회기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현재 동대문에 필요한건 새로운 유통시스템 구축”이라고 말했다.

    양홍섭 혜양엘리시움 사장은 “이제 동대문도 글로벌소싱의 대세를 따라야 한다. 과거처럼 Made in Korea에 집착하면 점점 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미 공실률이 3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지어지는 상가건축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동대문은 이미 유통시장으로 기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가야한다”고 꼬집었다.

    다행히 최근 중국 내 인플레이션상황과 위안화 강세로 중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미국․일본․유럽의 바이어들이 한국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또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한국의 소규모 일일생산시스템은 그나마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동대문을 말하는 이유>

    이제 글로벌소싱은 세계적 추세다. 동대문에 유통되고 있는 의류의 80%가 중국산이다. 이미 동대문은 글로벌시장이다. 문제는 글로벌시대에 과연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중국산제품은 가격경쟁력이 뛰어나다. 거기에 대규모생산이 가능한 규격화된 봉제생산시스템으로 세계 의류생산 공장이 되어있다. 과거와 같은 대량생산․대규모납기로는 중국의 아성을 넘을 수 없는게 현실이다. 글로벌시대에 동대문을 Made in Korea생산기지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애초 현실성이 없었다. 실제로 동대문은 2002년 이후 생산기지보다는 유통거점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글로벌동대문에 대한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해외바이어들이 동대문의 가치를 재인식하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산의 낮은 품질과 잦은 불량사고에 유럽․일본․미국․중동의 바이어들이 동대문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거기에 국내환율상승까지 가세해 수출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다품종․소량생산이 동대문만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조짐이다.

    관광특구로 지정된 후 외국인 관광객도 꾸준히 늘어 이제 동대문은 서울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됐다. 지난해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을 찾은 외국인의 50%이상이 동대문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 젊은 디자이너들의 해외진출을 돕고 동대문이 패션전문산업단지로 기능할 수 있는 적절한 지원을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가중심의 지원에서 벗어나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 산하 패션센터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수출지원단 같은 사업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봄․가을 연 2회 열리는 서울컬렉션이 유명디자이너를 위한 쇼가 아닌 중소의류업체와 동대문디자이너를 위한 도움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곳을 통해 신진디자이너들이 해외바이어와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동대문제품의 국제경쟁력 비교)
     구분 가격 품질 디자인 단납기 다품종소량생산
    한국
    일본
    대만
    홍콩
    중국



    (국가별 수출현황)

    국가 중국 일본 동남아 기타 TOTAL
    % 32 24 9 35 100



    (시장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

    총매출 10%이하 11~30% 31~70% 71~100 TOTAL
    % 75 11 6 8 100
    동대문의 역사
    동대문시장이란 종로5가 광장시장에서 청계8가 신설종합시장까지 약 2km의 청계천로 좌우와 그 안쪽 골목, 그리고 흥인문로(동대문운동장 전면도로)의 좌우 일대에 분포된 시장들을 총칭해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는 현재 30여개의 상가와 3만여 점포가 있고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만 10만 여명 이상이다.

    현재까지 동대문은 크게 4단계를 거치면서 국내 최대 패션산업 집적지로 성장했다.



    ◇ 제1단계-광장시장(1905년)

    근대 상권으로써 동대문은 1905년 광장시장설립으로 시작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종로일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자 배오개의 거상 박승직(두산그룹 설립자)을 포함한 4인이 종로와 동대문 일대 상인 26명과 결속, 1905년 자본금 7만8000원으로 한국인 최초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광장시장규모는 종로구 예지동 4번지(현동대문시장)일대에 단층 기와집 245칸, 함석지붕 53칸으로 입주 점포는 188개였다. 1930년대 후반 국내 면직물의 생산과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서울 포목상 업계가 일본산 면직물의 수출 거점으로 각광받게 되면서 동대문 포목상들은 도소매를 겸하여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후 주로 생활용품 등을 판매했으나 한국전쟁 뒤 구호의류가 시장에 흘러들어 오면서 포목․양장․양품․옷감 등을 취급하는 의류도매시장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 폭격에 잿더미가 되었으나 1959년 지금의 3층 건물로 복구됐다. 광장시장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한국 최초의 주식회사 탄생이라는 것이다.



    ◇ 제2단계-평화시장 개장(1961년)

    6.25이후 청계천 변에 공장 및 점포겸용의 무허가 판잣집이 지어졌고 이곳에서 생산과 판매가 이뤄졌다. 당시 상인의 대부분은 실향민들로 이뤄졌고 1958년 대형화재로 판잣집들이 거의 불타버려 다음해인 1959년 남은 오두막들을 철거, 청계천 복원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복개된 자리에 1961년 연건평 2만4420㎡(7400평)의 근대적 상가인 평화시장이 세워졌다. 실향민들을 주축으로 형성된 시장은 전쟁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평화시장’이라고 불렸다. 청계천 복개공사가 완료되고 시장이 확대 되면서 생산․판매의 1인 생산시스템에서 봉제와 판매의 분업이 이뤄지게 됐다. 평화시장 내에 봉제공장들이 들어서게 되고 여기서 최초로 시작된 자기 완결적 일일생산 시스템은 평화시장을 60~70년대 고도성장의 주역으로 만들게 했다. 당시 평화시장의 성공모델은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 집중적인 상가 설립 붐을 초래했다. 1970년 동대문종합시장을 필두로 70년대 중반 패션관련 제반 품목이 모두 동대문에 갖추어져 산업집적지로서 모습을 드러냈고 전국적 도매시장으로 발전하게 됐다.



    ◇ 제3단계-‘아트프라자’(1990년)

    동대문 동평화시장 뒤편에 위치한 ‘아트프라자’는 동대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당시 동대문은 폭발적 성장에도 불구 남대문시장의 아류로 존재했다. 하지만 아트프라자가 캐주얼의류를 주 품목으로 변화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가격파괴를 시도했다. 동대문만의 일일생산시스템을 활용해 남대문시장 고정고객들을 끌어들였다. 당시 아트프라자는 조기개점, 지방소매상 버스 유치 등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남대문 우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남대문시장에 출시된 신상품이 동대문에선 3일이면 카피돼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남대문 의류도매상인들이 대거 동대문으로 몰려들고 남대문의 의류시장 기능은 소멸됐다. 아트프라자의 성공은 이후 ‘디자이너클럽(1994년)’․‘우노꼬레(1996년)’․‘팀204(1996년)’․‘거평프레야(1996년)’․‘혜양엘리시움(1997년)’의 상가 붐으로 이어졌다. 혜양엘리시움을 끝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듯 했던 동대문은 서부상권에 밀리오레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게 된다.



    ◇ 제4단계-밀리오레(1998년)

    1998년 하루 18시간(11시~05시)영업과 이색 판촉행사를 내세우며 밀리오레가 등장했다. 과거 도매상권이 중심이던 동대문에 소매유통시스템을 구축하며 밀리오레는 국내패션유통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당시 IMF사태로 촉발된 경기침체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밀리오레의 실패를 점쳤다. 하지만 밀리오레는 이러한 세간의 우려를 종식시키며 패션유통의 새로운 모델을 지방으로 해외로 수출하며 한국 패션유통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이후 밀리오레를 벤치마킹한 두타(1999년)․헬로apM(2002) 그리고 현재 전국적으로 100개에 가까운 동대문 형 쇼핑몰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후 동대문의 일일생산시스템 붕괴와 무분별한 상가 붐, 내셔널브랜드들의 공격적 마케팅과 전국적인 브랜드아울렛 등장으로 동대문 형 패션유통 모델은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산 저가상품 집산지로 변모하고 있고 눈높이가 높아진 고객들은 외면하고 있다. 이제 글로벌동대문이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터뷰] 송병렬 사무국장


    지난 14일 동대문시장은 한창 공사 중이다.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세우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과 굿모닝시티 주변 마무리정리로 걸어 다닐 공간조차 부족하다. 풍물시장과 동대문지하상가 철거에 불만인 상인들이 빨간 띠를 머리에 동여매고 주야로 농성 중이다. 글로벌동대문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스산한 길을 지나 상가대표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사단법인 ‘동대문관광특구협의회’ 사무실을 찾았다.

    송병렬 사무국장을 만나 현재 동대문시장이 안고 있는 제반문제들에 대한 협회의 입장을 들어봤다.



    - 지금 동대문사정은 어떤가.

    “동대문은 원래 상인의 힘으로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장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산업집적지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이후 시장이 형성된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상가건설 붐으로 공실률이 30%에 육박한다. 상인은 장사가 안돼 동대문을 떠나는데 부동산업자는 계속해서 상가를 지어내다보니 수요․공급의 불일치가 형성된 것이다.”



    - 가장 큰 문제는?

    “동대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장이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대화창구가 없다는 것이다. 상인은 상인대로 상가는 상가대로 자기말만 하고 있다. 현재 동대문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서울지방중기청․문광부․서울시․중구청․남대문․명동․동대문 등을 하나로 묶는 상설협의체 구성을 협의 중이다.”



    - 결국 협회나 정부 위주로 간다는 이야기인가?

    “항상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어차피 상인들도 각자 정부와 소통할 방법들을 모색 중이다. 이렇게 하나로 묶어놓으면 다들 알아서 모이게 되어있다.”



    - 정부 지원시스템에 문제없나?

    “정부지원이 절실한데 지금 서울시의 지원창구에 문제가 많다. 동대문은 패션단지이면서 관광특구다. 관광 따로 패션 따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정부부처 시스템은 전부 양분돼 있다. 패션을 강조하면 관광이 사라지고 관광을 강조하면 패션이 사라지는 식이다. 지원창구를 단일화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 인위적 세대교체가 있다고 들었다.

    “당연한 것이다. 동대문은 이제 글로벌화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과거 동대문을 일궜던 세대는 변화를 싫어한다. 외국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이 많이 찾도록 하기 위해서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두타나 디자이너크럽과 같은 경우 나이 상한선을 두고 상가입점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 외국인 관광객은 유치는?

    “동대문이 서울시관광특구로 지정된 후 외국인관광객들이 꾸준히 늘었다. 지금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의 50%이상이 반드시 동대문을 거쳐 가고 있다. 향후 외국인관광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을 위한 유치시설도 확충하고 정부지원을 받아 통역서비스 등 부족한 부분은 채워갈 생각이다.”



    - 마지막으로 글로벌동대문의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나.

    “우선 동대문은 패션산업단지다. 패션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양성 해외마케팅 지원 등 향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다음, 이제 동대문은 옷만 팔아먹고 살수 없는 시스템이다. 외국인관광객을 유치해 관광수입을 올려야 한다. 서울시가 2012년까지 1200만명의 외국인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중 절반만 찾고, 그들이 평균 10만원정도를 소비한다고 가정해보라.”
    - 송윤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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